|
제목 : 트라이앵글(Triangle) 장르 : 호러, 미스터리, 스릴러 감독 : 크리스토퍼 스미스(Christopher Smith) 개봉 : 2009.08. UK
이 리뷰는 줄거리 보다는 보고 난 뒤의 감상평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영화가 약간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을 지니고 있어 그에 대한 해석을 적으려 한다. 지금부터, 쓰여져 있는 감상문의 글귀 중에 확정적 맺음의 형식을 띠고 있는 문체가 있으나 글쓴이 byecrazy 본인의 주관적 해석이므로 실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와는 틀릴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나 스스로 그러하다고 믿기에 확정적으로 쓴 부분이 있음을 밝힌다. 따라서 나의 해석을 받아드리는 것은 읽는이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일단.. 여자는 이미 죽은 상태이고 일종의 윤회를 겪는 것과 비슷하다. 단 윤회와 얼핏 비슷할 뿐, 이 영화 내용에서 반복되는 것은 윤회와는 다른 개념이다. 윤회라는 것이 '실제로' 세상에 태어남을 반복하는 것이라면, 이 영화에서 반복됨이란 실제 삶이 여러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죽은 상태에서 반복되는 상황일 뿐이다. 그럼 본론으로 넘어가서, 영화의 끝에 가면 나오는 내용으로서, 여자는 차 사고를 당한다. 자신의 아들은 차가 사고 나기 이전에 자신이 이미 죽였다. 그런데 영화 내용에서는 차 사고를 당하고도 여자가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렇지가 않다. 여자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장면이 있다. 서양에서는, 죽은자는 배를 타고 망각의 강을 건너게 돼있는데 여주인공 또한 배를 타고 가다가 자신의 과거 기억을 다 잊어버린 것으로 나오므로서 죽은 상태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여주인공은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하게 됨으로서, 망각의 강을 다 건너기 전에 배가 멈춰버린다. '자신의 죽음을 모르면 떠도는 유령이 된다'라는 서양의 구전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단 '육지에서 떠도는 유령'이 아니라 '배를 타고 바다를 떠도는 유령'이 된 것이다. 나룻배를 타고 안개낀 어두침침한 망각의 강을 건너는 것이 흔한 망자의 이야기겠지만, 이 영화에선 나룻배가 요트이고 망각의 강이 얕은 강줄기가 아닌 드넓은 바다라는 점이 다를 뿐 같은 배경이라고 봐도 무관하며 '여주인공은 이미 죽었다'라는 사실이 동일선상에 놓여 있음은 변함 없다. 그것을 인지 하지 못하면 '배회하는 유령'이 되는 것이고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그 굴레를 벗어나 천당이든 지옥이든 가게 된다는 것은 옛날부터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꺼리이다. 망자가 이용하는 나룻배를 요트로, 강을 바다로 바꾼 그 단순한 내용 조차 알아채지 못하고 '뭐가 숨겨진 내용이야, 그냥 반복인데?'라고 생각하는 것은 단호히 말해 관찰력 부족이거나 지식 부족이다. 그리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신의 죽음을 깨닫지 못하면 유령이 된다고 토속적으로 이야기 하곤 한다. 따라서 영화 내용에서 배가 멈춰버린 것은 여주인공이 죽음을 깨닫지 못한 상태가 됨으로 인해 목적지로 갈 수 없음을 말한다. 또한 동양에서도 죽은자는 도솔천에서 기억을 잊는다는 이야기가 있으므로 이해가 불가능한 스토리라고 할 수 없다. 이 영화는 자신의 죽음을 인지 하지 못한, 또는 믿지 않으려 하는 여자의 몸부림이다. 그리고 이것이 아름다운 반복이 아니라 끔찍한 반복인 이유는, 아들을 죽인 죄값이라고 볼 수 있지만 아직 목적지에 도착해 심판을 받은 것이 아니므로 죄값을 받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여겨진다. 따라서 죄값이라기 보다는 빨리 환상을 떨쳐내서 죽음을 깨달으라는 뜻이 강할 것이다. 만약 아름다운 환상이라면 푹 빠져 헤어나오지 않으려 할 것이니 영원히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현실에선 불가능한 상황, 그것도 끔찍한 상황에 놓이게 하므로서 망자가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게끔 만든 상황이 이 영화의 내용이다. 그곳을 벗어나는 방법은 결국 또 다른 자신에게 죽는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여주인공은 죽은자이지만 그것을 알아차리거나 알았다 해도 믿으려 하지 않으니 또 한번 더 죽어서라도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라는 것이 이 영화 내용이다. 결론적으로 자신이 죽어야만 배는 다시 출발할 것이다. 영화 내용에서 목걸이가 하수구 같은 곳으로 떨어져 있는 것은 '목숨이 끊어졌다'라는 것을 여주인공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영어로도 목걸이는 Necklace로, 쉽게 말해 Neck(목)의 lace(끈)"목끈, 목숨"이 끊어져 손이 닿지 못하는 하수구로 떨어진 것이다. 하수구는 지옥을 암시한다.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목걸이를 잃어버린 상태였다는 것은 이미 죽어있다 라는 것을 잘 말해준다. 그것을 배에서 찾았다가 다시 잃어버리는 것은 단순히 죽음을 알아채라는 뜻 뿐이고 삶을 다시 준다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금방 잃어버린 것을 보면, 목걸이를 다시 찾게 된 것은 목숨을 다시 찾은 것이 아니라 임시적인 삶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영화 내용에서 여주인공의 시체가 수십구 쌓여 있는 것 역시 '죽음을 깨달아라'라는 뜻으로서, 글이나 말로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너는 이미 죽어있다'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으라는 의미이다. 종합적인 해석이라면, 죽음을 깨닫고 유령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되면 목걸이가 하수구에 떨어진 것처럼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다 라는 뜻이다. 꼭 지옥까진 아니더라도 :) 내가 봤을 때 이 영화는 서양인들의 사고에 참 친절하게 제작된 영화이고 이해가 쉬운 영화이다. 다만 한국이라면, 저승사자 이야기가 나와야만 망각의 강을 연계해 떠올리므로 애초에 영화 내용이 이해가 불가능할 가능성이 약간은 있을 걸로 보인다. 따라서 동양 문화권인 한국인 관객이 보기에 단순 영화로 치부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물론 영화감상에 약간의 지혜를 쓸 줄 아는 사람이 보기엔 참 재밌는 영화임도 분명할 것이다. 그러나 저승사자는 저승사자 답지 않을 뿐 분명히 이 영화에 나온다. 뭐 간단히 말해서 이 트라이앵글은 현대판 '망각의 강'이다. '과거에 나룻배를 탔다고 해서 꼭 나무로 된 걸 탈 필요있나. 그러니 요트다.' 라고 말하고 있다. '강이라고 해도 어차피 같은 물, 바다로 가자.' 라고 이 영화에 나와있다. 죽은자를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이 저승사자, 하지만 현대에는 친구의 얼굴로 자연스럽게 꼬드겨서 배에 타게 한다. 이 영화의 원작자가 누구인지 몰라도 참 재밌는 발상을 했다. 유령이라면 흔히 '육지의 무덤' 주변을 떠도는 것을 생각하지만 완전히 발상의 전환을 하여 '배에서 자기 마음대로 떠돌지 못하는 유령'으로 만들어 버렸다. 저승사자가 힘으로 끌고 가고 직접 입으로 말해서 죽음을 일깨워주는 강제성을 띤다기 보다 스스로 배에 타게 하고 스스로 죽음을 깨닫게 만드는 '자발적 탑승?'을 이 영화는 말하고 있다. 한국 네티즌들의 욕을 먹기엔 안타까운 영화긴 하지만 서양 영화니 상관 없으리라 보인다.
|
당신의 의견을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