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답이 없군.

2007/04/19 03:48 / 늘어놓기
  나는 가장 마지막 보루로 쫓기고 말았다. 애원해도 멈추지 않는 것, 시작과 끝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면서 죽음과 탄생에 가장 근접한 그것, 바로 시간에 말이다.
  백설공주라는 동화에서 악인으로 낙인 된 계모가 원판에는 친모라고 한다. 백설공주를 낳은 왕비는 자신의 친딸을 그렇게나 증오했다. 친딸을 죽여서라도 남편에게서 사랑을 되찾으려고 한 것,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된 궁극적인 이유로는 늙은 자신에게서 도저히 매력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원판에서는 백설공주가 왕과 성관계를 맺었다고 한다. 친부와 친딸이 말이다. 그것을 알게 된 한 여자, 백설공주의 친모이면서 왕의 아내인 바로 그 왕비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끝에 내몰리게 된 왕비가 믿게 된 것은 결국 사람이 아니라 거울이었다.
  또한 그것은 내 생각에는, 말하는 마법의 거울이 아니라 결국에는 자신이 묻고 자신이 답하는 상황일 뿐이었다고 판단 된다.
  남편이 사랑해야 할 것은 당연히 아내이다. 그런데 남편은 친딸과 성관계를 맺는다. 친딸의 자리는 본래 왕비의 자리인 것이다. 왕비가 백설공주라는 동화에서 보인 행동은 엄연히 따지고 보면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되찾기 위한 몸부림에 불과하다. 원판에서든 동화에서든 얼마나 비극적인 한 여자(왕비)의 일생을 그리고 있는가. 고개가 절로 저어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원판의 백설공주는 비극적이라기 보다는 참으로 기괴할 따름이다. 결국 왕과 공주, 시체수집가 왕자, 변태 난쟁이들과 같은 모든 등장인물은 원판의 경우 하나도 제대로 된 것이 없다. 오로지 왕비만이 정상적인 감정을 지닌 인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비록 복수, 증오, 왕에 대한 집념, 자신에 대한 애착과 같은 요상한 감정일지라도 말이다.
  아무래도 백설공주의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스스로가 아무리 정상이라도 주변 사람들이 비정상적이라면 결국 나 역시 잘못된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마다 해석은 다 다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 동화에서 "말하는 거울"은 곧 왕비 자기 자신이었다. 그런 거울마저, 자신 스스로마저 상대의 가치를 인정해버린다. 그것에 못이겨 왕비는 결국 스스로 거울을 깨버렸고 그때서야말로 내부로의 몰락이 일어나는 시점이다. 나와 같은 정상적인 대상, 비록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이라도 그것은 나와 의사소통이 되는 마지막 이해자였던 것이다.
  남이 인정을 해주지 않으면 끝내는 자신을 스스로 위안삼는 것이 마지막 보루가 된다. 왕비는 백설공주와 나이차이로 인해 아름다움에서 밀려버린 것, 즉 아무리 거부하여도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의 시간에 패한 것이다. 따라서, 상대를 제거함으로써 위치를 사수시키려는 입장을 보인다.
  하지만 내가 추구하는 것은 왕비의 꿈과는 다르기 때문에, 나와 왕비의 상황은 시간에 쫓긴다는 사실은 닮아있다고 할 수 있으나 나머지 반은 내가 어떻게 꾸려나가는가에 따라 판이하게 틀려질 것이다.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시간을 적게 거친 쪽에서 주도권을 가지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지식이나 지혜라는 것은 꾸준히 개발하면 할 수록 더 오묘해지는 법이니까.

                                                     -070304 새벽에 JH 씀.
2007/04/19 03:48 2007/04/19 03:48
byecrazy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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